
이 닭을 아시나요
이 닭을 아시나요?
초인종이 울렸다. 월레스는 신문을 읽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깃털, 무표정한 얼굴. 펭귄이었다. 손님방을 세놓겠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이 낯선 존재는,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가방을 내려놓고 그로밋을 쳐다보았다. 단순한 하숙인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존재인가?

페더스 맥그로. 그 이름은 사건이 끝난 후에야 밝혀졌다. 아니, 사실 그로밋이 본 신문 기사 한 구석에서나 등장했을 뿐, 그 누구도 처음부터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말이 없는 존재는 주목받지 않는다. 그는 이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 대신 행동으로 움직였고, 서서히 공간을 장악해갔다. 원래 그로밋이 쓰던 방을 차지하고, 음악을 틀어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고, 자신의 몸에 맞춰 문까지 개조했다. 월레스는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펭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심을 받지 않는 생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로밋은 알았다. 그의 눈빛이 평범한 동물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정을 배제한 눈동자, 목적을 향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움직이는 몸짓. 그는 이미 단순한 손님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로밋은 방에서 그가 남긴 흔적을 찾아냈다. 정리된 문서, 계산된 이동 경로,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증거. 월레스의 발명품, ‘전자바지(Techno Trousers)’의 설계도를 검토하고 있던 흔적.

그리고 마침내, 계획이 시작되었다. 한밤중, 월레스는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했다. 깨어나려 해도 눈꺼풀이 무겁고,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발밑에서 움직이는 이 기계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발명한 바지가, 이제는 범죄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페더스 맥그로는 그의 발명품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은 말하는 존재에게만 속는다. 그렇다면 말을 하지 않는 존재라면?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그로밋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유일한 존재. 맥그로는 그의 존재를 간과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개였으므로, 그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시끄러운 음악, 서서히 밀려나는 공간, 월레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조작. 모든 것은 그로밋을 집에서 몰아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성공했다. 그로밋은 집을 나섰고, 이제 그를 방해할 존재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 페더스 맥그로는 치밀했다. 하지만 그로밋은 끈질겼다. 그가 집을 떠났을지언정,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몰래 숨어 그의 행동을 감시했고, 마침내 결정적 순간을 포착했다. 페더스 맥그로가 변장한 모습을 본 것이다. 머리에 빨간 장갑을 쓰고 닭으로 위장한 그의 모습. 모든 증거를 하나로 맞출 마지막 퍼즐이었다. 수배 중이던 도둑, 정체불명의 하숙객, 그리고 머리에 쓰인 닭 벼슬 모양의 고무장갑.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는 패배했다. 숨겨둔 다이아몬드는 드러났고, 그의 계획은 와해되었다. 도망가려 했으나, 끝없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마침내 그는 붙잡혔다. 다름 아닌, 그 자신이 개조했던 전자바지에 의해. 그는 이제 경찰서로 향하고 있었다. 단 한 마디의 변명도 없이, 단 하나의 감정도 없이.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남아 있었다. 교묘한 심리 조작, 완벽한 신분 위장, 기술을 이용한 범죄. 그러나 결국, 한 마리 개의 직감에 의해 그의 계획은 허물어졌다.
![월레스와 그로밋] - 그 펭귄 출소한다...](https://img1.daumcdn.net/thumb/R800x0/?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kb7cE%2FbtsHTmTD7ly%2F3Y44q6Y96S5Ub9bWZHU8K1%2Fimg.jpg)
그렇게 끝난 이야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말 끝이었을까? 수감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여전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금 그 초인종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공간에서. 하지만 본질은 같을 것이다. 말이 없는 존재는 주목받지 않는다. 그는 이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기억해 보십쇼. 이 닭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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